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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테스 기구 위 명랑한 잔 다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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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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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응원하는 힘으로 전진하는 사람이 있다. 신체적 제약을 지닌 이들의 하루를 격려하는 마음이 열렬해질수록 두 다리의 속근이 왕성해지고 양어깨의 근육에 힘이 실린다. 장애인에게 필라테스를 가르치는 강사 이디다 씨가 필라테스로는 단련시킬 수 없는 특별한 근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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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다니다 보면 카페만큼 많이 눈에 띄는 사업장 중 하나가 필라테스 센터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여건이 된다면 가장 하고 싶은 생활 체육’으로 수영과 테니스를 제치고 필라테스가 1위로 꼽혔다. 체형을 바로잡고 근력을 강화하며 몸매까지 다듬어 주니 누구에게나 필요할 만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라테스 하는 장면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지체장애인들이다. ‘불편한 몸으로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지 않을까?’ ‘재활이 우선이지 다이어트와 체형 교정을 위해 운동할 필요가 있을까?’ 여러 선입견을 깨고 보란듯이 지체장애인을 가르치고 있는 필라테스 강사 이디다(36) 씨 역시 4년 전만 해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한 사회적 기업에서 재활 운동 연구원 겸 프리랜서 필라테스 강사로 일할 당시 장애인과 처음 대화를 해봤어요. 고등학생이었던 지우가 제 첫 장애인 수강생이었는데 어느 날 재활 운동 말고 필라테스를 배우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전까진 장애인은 재활 운동도 버거워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들도 균형 잡힌 몸매에 대한 욕구가 있었던 것이죠.”

 

뇌병변장애로 휠체어를 타는 현실에서도 원하는 것을 해보려고 노력하는 소녀의 용기는 큰 울림을 주었다. 지우에게 반드시 필라테스를 가르쳐줘야겠다는 결심이 선 디다 씨는 활동처인 서울 용산 일대에서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필라테스 센터를 찾아다녔다.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화장실 문이 좁아 휠체어 출입이 불가능한 곳이 많은 여건에서 두 달 동안 백방으로 뛰어다녀 겨우 적당한 시설을 갖춘 여덟 군데의 센터를 찾아냈으나 허사였다. 모두 장애인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대관해 주지 않았다.

 

서울의 중심지에서조차 장애인 체육시설을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인 현실에 그녀는 몹시 허탈해졌다. 하지만 실망으로 끝낼 그녀가 아니었다. 자신이 직접 필요한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 그렇게 국내1호 베리어프리(Barrier-free) 필라테스 센터 ‘디아앤코’를 열고 그녀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에 용감히 뛰어들었다.

 

“처음엔 제가 장애 유형과 특징을 잘 몰라 실수투성이였어요. 지우를 데리고 첫 수업을 하는데 50분 수업이 15분 만에 끝나버렸죠. 그 친구에게 불가능한 동작일 줄 모르고 수업을 준비한 탓이었어요. 휠체어에서 하는 재활 운동과 여러 기구를 활용해 다양하게 움직이는 필라테스는 엄연히 다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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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걱정할 시간에 하나라도 직접 해보자는 주의인 디다 씨는 그날부터 학구열을 불태웠다. 수강생에게 현재 컨디션, 동작 후에 느끼는 자극 등에 대해 폭풍 질문을 해가면서 몸 상태를 꼼꼼히 파악했고 새로운 수강생이 들어올 때마다 동일한 장애를 지닌 유튜버의 채널을 보면서 생활 습관, 신체의 가동 범위 등을 면밀하게 살폈다. 의욕적으로 파고들자 마침내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법은 잃어버린 신체 기능이 아닌 남아 있는 기능, 즉 잔존 기능에 있었다. 

 

“장애인에게 남아 있는 몸의 기능이 의외로 많아요. 보행을 한 걸음도 못 하는데 대둔근은 살아있어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브릿지 자세가 가능하고, 뇌성마비로 전신이 경직돼 있지만 코어 힘이 있어 앉아서 하는 동작들이 가능하기도 하죠. 장애인이라 해서 특별한 기구를 사용하거나 색다른 동작을 할 필요가 없어요. 다만, 그들이 이해하기 쉽게 언어 선택에 신경 쓰거나 다른 부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금 더 잡아주는 역할만 할 뿐이죠.”

 

현재 그녀는 신체장애, 감각장애, 발달장애로 장애 유형을 나눠 맞춤형으로 베리어프리 운동을 진행한다. 불가능할 것 같은 운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체계적인 지도에 누가 용기내고 싶지 않을까. 처음에 세 명이었던 장애인 수강생이 현재는 50여 명에 이른다. 아무리 수강생이 많아도 한 명 한 명 건강 상태와 성향을 기억해 세심히 가르치는 그녀는 천사표 선생님이지만 운동 기구에서 내려오면 달라진다. 수강생이 휠체어에 앉은 채로 출입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써도 잡아주는 법이없고, 교실 바닥과 화장실에 손잡이를 설치하거나 미끄럼 방지 시트를 깔지도 않았다. 거동이 불편해 지각해도 보충 수업을 해주지 않고 종료시간에 가차 없이 수업을 끝낸다. 냉정하다고 느끼는 수강생도 있겠지만 불필요한 친절을 베풀지 않는 이유에는 그들이 살아갈 앞으로의 시간까지 생각하는 그녀의 깊은 마음이 담겨 있다.

 

“저와의 수업이 끝나도 그들이 언제든 원하는 운동을 즐기며 살아가면 좋겠어요. 앞으로 그들이 다니게 될 체육시설은 대부분 비장애인의 편의에 맞춰진 곳들일 거예요. 그때마다 누군가가 문 열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잖아요. 제가대신 해결해 주기보다 묵묵히 기다려 주며 스스로 헤쳐나가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그들의 삶에 더 보탬이 될 거예요.”

 

몸이 불편하단 이유로 못 하는 일이 최대한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정의감은 지금도 새로운 발걸음을 망설이고 있을 수많은 장애인에게 향한다. 공공의 베리어프리 필라테스 센터로 전향하기 위해 작년에 법인사업자로 전환했고, 비장애인들이 체육시설에서 장애인을 만나도 꺼리지 않길 바라며 장애인식 개선 수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춘 공공체육시설의 건립비를 국가가 50% 지원하는 사업에 서울에서 한 곳도 신청하지 않은 결과도 흘려 넘기지 않았다. 민간 체육시설들이라도 장애인을 수용해야 한다는 소신으로 관련업계 운영진과 강사들에게 그동안 쌓아온 교육 커리큘럼을 부지런히 전수하는 중이다.

 

장애인의 삶의 질을 한층 끌어올리려는 그녀의 노력은 체육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년 전 그녀의 결혼식 풍경도 조금 남달랐다. 기쁜 날을 축하하러 온 제자들이 신부대기실에 들어올 때마다 그녀는 단상 위 의자에서 내려와 집에서 일부러 챙겨온 접이식 의자를 바닥에 펼치고 앉았다. 휠체어에 앉은 제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찍은 사진 속 그녀의 미소는 지금도 선명하게 빛난다.

 

“대다수의 장애인은 하고 싶은 일을 습관처럼 포기하며 지내요. 그런 그들이 저를 만나 용기를 얻어서 색다른 일상을 사는 것만큼 저 스스로 자랑스러운 순간은 없어요. 제가 제일 기쁜 순간이 언제냐면 수강생들이 ‘기타반에 등록했다’ ‘보컬 레슨을 신청했다’ 같은 소식을 전할 때예요. 운동을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감을 심어줘서 전에는 누리지 못한 즐거움을 하나씩 발견하게 해주고 싶어요.”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이들을 위해 기꺼이 팔다리가 되어주는 디다 씨를 보면 잔 다르크가 연상된다. 줄기차게 난관에 부딪히는 전쟁터 같은 일상에서 그들이 행복을 쟁취할 수 있도록 이끄는 모습이 멋진 영웅 같다. 그런데 본래 영웅의 삶은 고달픈 법 아니었던가? 그녀는 하도 발랄하여 손가락도 웃고 머리카락도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혼 후 체중이 10kg 늘었어도, 명문대학교 졸업 이력이 직업상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과거보다 수입이 크게 줄었어도 생기가 넘친다. 옳다고 여기는 일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그녀에게 삶은 언제나 즐길만한 것. 그 건강한 가치관이야말로 그녀로부터 가장 전수받고 싶은 점이다.

 

이디다 씨의 인스타그램@dia.n.co

장애인들이 필라테스를 배우는 모습이 영상으로 담겨 있다. 신체적 제약을 뛰어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선생과 제자들의 땀방울에 ‘불가능은 없다’라는 말이 맘속에 절로 새겨진다.

에디터 한재원 | 사진 이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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